콘텐츠를 전달하는 매체의 변화는 곧 기술의 발전을 의미한다. 인쇄술의 발전과 이를 통한 신문의 등장, 소리로 정보를 들을 수 있는 라디오의 발달, 영상으로 콘텐츠를 확인하는 텔레비전과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관련 기술이 진보하면서 미디어는 보다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최종 진화물은 어떤 모습일까. 아마 VR(가상현실)과 AR(증강현실)을 바탕으로 실제 현실을 완벽하게 재현하거나, 혹은 현실 자체를 뛰어넘는 새로운 경험마저 가능할지 모른다. 지난 27일 판교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에 진행된 ‘실감(實感)토크: VR‧AR 현주소와 미래’ 포럼은 VR‧AR 기술의 현주소를 살펴 보고, 해당 기술이 만들어 갈 미래를 전망하는 자리였다.
“VR, 인간의 원초적 욕구 충족시켜”
먼저 박재헌 KT IM 전략팀장이 실감형 미디어와 기존 미디어의 차이점에 대해 설명하며 ‘실감콘텐츠 시장동향과 기업전략’ 발제를 시작했다.
그는 기존 미디어를 3인칭 관찰자 시점, VR을 활용한 실감형 미디어를 1인칭 시점에 비유하며 “실감형 기술 및 통신 인프라 발전에 따라 높은 현실감과 실시간 상호작용이 가능한 다양한 형태의 실감형 미디어가 등장했다”고 전했다. 박 팀장은 실감형 미디어에 대한 설명으로 “이용자가 직접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해 사물을 관찰하고 직접 체험하고 싶은 인간의 원초적 욕구를 충족시킨다”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도 긍정적이다. 실제 연구결과 VR 사용자의 70% 이상이 VR 사용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드러냈다.
어떤 점이 사용자들을 매료시켰을까. 박 팀장이 제시하는 실감형 미디어의 최대 장점은 기존 미디어 대비 이용자의 공감을 끌어내는데 매우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스탠포드대에서 실험한 결과는 이를 잘 보여준다. 연구진은 홈리스 주거지원에 대한 필요성을 홍보하면서 일부 사람에게는 2D 영상 시청을, 나머지 일부에게는 VR 체험을 실시했다. 그 결과 VR 영상을 체험한 사람들의 공감지수가 월등하게 높았다.(관련 링크)
박 팀장은 “방세를 내기 위해 팔아야 할 물건을 선택하고, 물건을 도난당하지 않도록 피신할 곳을 찾는 등 실제와 같은 체험을 통해 사람들은 홈리스의 애환에 좀 더 공감할 수 있었다”라며 “이와 같이 실감형 미디어는 공감에 기반한 마케팅 혁신을 선도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내다봤다.
“영화, 스포츠 중계 통해 VR에 익숙”
시장 전망 역시 낙관적이다. 박 팀장은 “관련 시장의 성장이 가속화될 것”이라 전망하며 몇 가지 근거를 제시했다. 그가 제시한 근거는 단말기의 가격 하락, 킬러 콘텐츠 등장, 콘텐츠 과금 의향 상승, 기업의 VR 도입 확산 등이다.
이중 특히 중요한 것이 킬러 콘텐츠의 등장과 그에 따른 과금 확산이다. 박 팀장은 “지금까지의 실감형 미디어 콘텐츠는 일회성이 많았지만 VR 리듬 게임 비트 세이버, 컴퓨터를 VR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버추얼 데스크톱 등 지속적으로 이용하는 킬러앱이 갈수록 늘어날 것”이라며 “이렇게 소비자들이 실감형 미디어에 익숙해지면서, 관련 콘텐츠에 금액을 지불하는 것도 자연스러워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미국의 경우 2015년도 기준 VR 친숙도가 45% 수준에 머물렀으나, 2018년에는 그 비율이 78%까지 올라가는 등 빠르게 VR이 일상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평가다. 이는 ‘레디 플레이어 원’ 등 VR를 소재로 한 영화의 흥행, 동계올림픽 등 각종 스포츠의 VR 중계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박 팀장은 “전 세계적인 영상 플랫폼인 유튜브, 넷플릭스 및 뉴욕타임스와 같은 언론 역시 VR을 도입하면서 VR 영상 제작 및 이용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라며 게임, 영상, 체험 등 다양한 분야에서 VR 활용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스마트 글라스, 곧 스마트폰처럼 자리 잡을 것”
두 번째 발제에서는 AR의 개념과 실제 산업에서의 활용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다. AR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 버넥트(VIRNECT)의 김재인 이사는 ‘AR의 진화와 미래’라는 발제를 통해 “AR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다학제적 기술이 필요하다”라며 “카메라와 디스플레이 관련 광학, 인공지능, 통신 및 계측,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CI) 등 많은 연구와 연관이 된다”고 밝혔다.
이렇게 다양한 연구의 융합을 통해 말 그대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이 김 이사의 주장이다. 그는 각기 다른 공간에 있는 아빠와 딸이 AR을 통해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영상을 보여주며 “딸의 행동이 홀로렌즈를 통해 정교하게 캡처되어 구현되기에 이와 같은 일이 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관련 영상)
김 이사는 이어 “AR이란 현실에 가상의 이미지를 덧대어 보여주는 기술로서 디스플레이의 공간적인 제약 없이 유용한 정보를 보여줄 수 있어 산업적 활용 가치가 높다”라고 말했다.
특히 AR 활용의 핵심으로 지목되고 있는 것이 스마트 글라스다. 착용감이나 해상도 등의 문제로 현재는 그리 활성화되어있지 않지만, 기술이 발전하고 AR 활용이 늘어나면서 장차 스마트폰처럼 누구나 사용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김 이사의 분석이다.
“위험하고 비효율적인 산업현장, 효과적으로 개선”
그렇다면 산업 분야에서 AR은 어떤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까. 대표적인 사례가 복잡한 기계에 대한 매뉴얼이다. 김 이사는 “실제 종이 매뉴얼과 스마트 글라스 속 AR 매뉴얼을 바탕으로 작업을 진행해 본 결과 효율성에서 많은 차이를 보였다”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숙련된 담당자가 원격 업무 지원을 통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직관적으로 설명해줄 수도 있다.
이 밖에도 물류 창고에서 작업 정보 및 동선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거나, 지능형 CCTV를 통해 문제 상황을 실시간으로 경고하는 등 여러모로 AR의 활용도가 높다는 것이 김 이사의 설명이다. 각종 설비 상태나 사물인터넷 센서의 데이터를 AR로 시각화해 4차산업혁명의 핵심 중 하나인 스마트 팩토리 운영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기존 산업현장의 비효율적이고 위험하며 많은 비용이 소모되던 업무들을 효과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 김 이사가 제시한 AR의 장점이다.
김 이사는 “오늘날 많은 기업들이 마이크로소프트의 문서 프로그램 등을 기본적으로 업무에 활용하는 것처럼, 궁극적으로 각 현장에 맞는 AR 매뉴얼을 비전문가도 쉽게 제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통해 안전하고 효율적인 작업환경을 만들 수 있다”며 산업 현장에서의 AR 활용에 대해 긍정적인 진단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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