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만났다: '가상현실' 속 그리운 사람과의 재회, 실제 치유가 될까?

  • 김효정
  • BBC 코리아
MBC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에서 장지성 씨가 3년 전 세상을 떠난 딸 나연이를 VR을 통해 재회했다

사진 출처, MBC

사진 설명, MBC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에서 장지성 씨가 3년 전 세상을 떠난 딸 나연이를 VR을 통해 재회했다

"나연아, 잘 있지? 엄마 나연이 보고 싶었어. 나연이 안아보고 싶어."

3년 전 세상을 떠난 딸과 가상현실에서 만난 엄마 장지성 씨는 흐느끼며 이렇게 말했다.

6일 MBC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에서는 장 씨가 혈액암으로 갑작스레 떠나보내야 했던 7살난 딸을 VR(Virtual Reality) 속에서 만나 소통하는 모습을 그렸다.

감기인 줄 알고 찾았던 병원에서 셋째 딸 나연이는 희귀 난치병 진단을 받았고, 한 달만에 눈을 감았다.

이별 뒤에도 장 씨는 나연이의 존재를 기억하려 애썼다.

블로그에 아이를 그리워하는 글을 꾸준히 쓰고, 몸에는 나연이의 이름과 생일을 새겼다. 아이 뼛가루를 넣은 목걸이도 늘 착용하고 다녔다.

'어떻게라도 한 번 보고싶다'라는 장 씨의 바람을 위해 제작진은 VR 기술을 동원, 나연이의 얼굴과 몸, 표정, 목소리를 구현했다.

나연이의 등장에 장 씨는 눈물을 흘리며 VR 속 나연이를 안으려고 애썼다.

좋아하던 미역 국을 끓여준 뒤 사랑한다고, 한 번도 잊은 적 없다고 말해주는 것이 바람이었던 엄마는 미역국도 주고 생일 케이크에 초를 켜기도 했다.

만남 이후 지성 씨는 "웃으면서 나를 불러주는 나연이를 만나 아주 잠시였지만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늘 꾸고 싶었던 꿈을 꾼 것 같이"라며 "나연이를 그리워하고 아파하기보다는 더 많이 사랑하면서 내 옆의 세 아이들과 많이 웃으며 살고 싶다. 그래야 나연이를 만날 때 떳떳할 수 있으니"라는 글을 개인 블로그에 남겼다.

디지털 복원 과정...다양한 기술 접목

제작진에 따르면 나연이의 생전 모습을 담기 위해 모션 캡처, AI음성인식, 딥 러닝(인공신경망 기반 기계학습)' 등 다양한 최신 기술이 사용됐다.

남겨진 사진과 동영상 속의 나연이의 몸짓, 목소리, 말투 등이 재료로 활용됐다.

이후 비슷한 나이대의 대역 모델을 통해 VR 속 모델의 기본 뼈대를 만들었다.

나연이의 목소리는 몇 개 없는 동영상 속 나연이의 실제 목소리를 토대로 했다. 부족한 데이터는 5명의 또래 아이 목소리를 더빙하여 '딥러닝'을 통해 채웠다.

제작 과정은 자료 수집부터 완성까지 총 7개월이 넘게 걸렸다.

관련 반응은 뜨거웠다. 유튜브 영상은 일 기준 조회 수 1,300만회를 넘길 정도로 관심을 모았고, 전 세계 시청자의 댓글 19,000여개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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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아이를 나도 만나고 싶다. 제발 VR로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 '기술의 가능성에 놀랐다', '대중화됐으면 좋겠다' 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가상 현실 속 만남에 우려를 표하는 글도 볼 수 있었다. '천국인지 지옥인지 모르겠다'라는 내용부터 '만남 이후 더 큰 슬픔과 허망함에 빠질까봐 걱정이 된다'며 휴유증을 걱정하는 반응 등이었다.

VR로 나연이를 구현한 비브스튜디오 이현석 감독은 제작팀 역시 이 부분 때문에 기획 단계부터 완성 이후에도 굉장히 신중하게 접근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프로젝트 참여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 어머니 블로그 내용과 인터뷰 등을 봤을 때 가족들이 나연이를 기억하고 사랑하는 방법에 있어 매우 건강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제작팀은 어머니 장지성 씨가 충분히 '공감'하도록 하기 위해 기획과 시나리오 작업에만 약 4개월 가까운 시간을 쏟았다.

이 감독은 "다큐멘터리엔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지만 왜 나비가 날아와서 어머니가 맴도는지, 나연이가 왜 핑크색 가방과 슬리퍼를 신고 있는지, 왜 나연이가 엄마에게 감자꽃을 건네고 더 이상 슬퍼하지 말라고 하는지, 이 모든 장치와 연결 고리들은 어머니와 나연이의 추억과 기억에서 나온 스토리 텔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진심이 담긴 이야기를 디지털 휴먼 기술, 가상 현실 기술, 인공지능 음성인식 기술, 3D 스캐닝 기술 등의 힘을 빌어 가족 분들에게 행복한 경험을 선물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나연이와의 만남, 애도 상담과정과 비슷'

심리학 전문가는 이런 VR을 통한 만남이 애도 상담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KU마음건강연구소 고선규 교수는 "준비되지 않았던 사별을 경험한 사람들이 급성 고통이 지난 후 제대로 된 이별(Farewell)을 하는 경험이 큰 도움이 되곤 한다"며 "나연이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전하면서 잘 가라고 작별하는 경험이 어머니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고 분석했다.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이동귀 교수도 "빈 의자에 앉아있다고 상상하고 그 사람에게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해보도록 할 때가 있다"며 "소중한 사람에게 차마 하지 못했던 말들을 해 보는 것 자체가 감정의 정화감, 속풀이의 측면에서 도움이 된다"고 했다.

치매환자들을 위해 1953년 6월 있었던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을 재현한 VR

사진 출처, The Wayback VR

사진 설명, 치매환자들을 위해 1953년 6월 있었던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 날을 재현한 VR

실제로 가상현실 기술은 이미 '인간 심리 치유 영역'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 교수는 "불안장애나 공포증 치료에서 가상 현실이나 증강 현실 등이 이용되고 있다"며 "VR, AR 기술로 상상을 거의 현실화 하면서 불안자극을 제시하고 이를 단계적으로 극복하는 시도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AR은 증강 현실로 현실에 정보를 추가로 제공하는 기술이다.

치매나 우울증 등에도 VR 등은 활용되고 있다. 게임 훈련 방식의 VR도 있지만 이번 '너를 만났다'처럼 과거 추억을 스토리텔링의 주제로 삼는 경우도 있다.

영국 '더 웨이백'은 시험판으로 치매환자들을 위해 1953년 6월 있었던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을 재현했다. VR을 통해 과거로 시간여행을 해 머릿속 깊숙한 곳 기억을 떠올리는 식이다.

심리 치료 영역은 아니지만 떠난 고인과 남은 가족을 연결해주는 가상 현실 기술도 있다.

지난 2016년 일본 기업 양심석재는 '스팟메시지'라는 AR을 통해 묘지 비석에 고인의 사진이 나타나게 하는 서비스를 내놨다.

AR을 통해 고인의 사진이나 메시지를 나타나게 하는 서비스도 있다

사진 출처, 葬祭利用Spot message

사진 설명, AR을 통해 고인의 사진이나 메시지를 나타나게 하는 서비스도 있다

대중화 가능성

그렇다면 '너를 만났다' 사례와 같이 갑작스레 이별한 이들과 재회하는 VR 프로그램은 상용화나 대중화가 가능할까?

나연이의 모습을 제작한 비브스튜디오 이현석 감독은 아직 쉽지 않으며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 개인의 상황에 맞춰 스토리텔링을 하고 실제감 있는 모습을 만들어내려면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상용화되더라도 사람의 마음과 연결되기 때문에 의학과 심리학적인 견해도 포함돼야 건강한 컨텐츠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고선규 교수는 치료의 목적으로 VR을 활용하려면 어떤 맥락에서 고인을 만나야 하는지 충분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외국은 VR로 상실의 이슈를 다루기 전에 애도에 대한 충분한 심리교육을 한다는 것이다.

그는 "죽음의 의미를 재구성해 적극적으로 (남겨진 사람이) 자신의 삶으로 통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동귀 교수 역시 "대중화 하면 신기하기는 하겠지만 더 큰 상실감 등 부작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명상 훈련을 하거나 남아있는 감정들을 전문가와 이야기하며 다시 현실로 돌아와 재적응 하는 상담 과정이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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