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바로가기

기사 상세

기업

아바타·아이언맨 기술로 車 만든다…VR로 시간·비용↓

최기성 기자
입력 : 
2019-09-09 06:01:02
수정 : 
2019-09-09 09:21:45

글자크기 설정

사진설명
사진출처=포드, 르노, 만, BMW
[세상만車-125]

# SF 영화 '아이언맨'이나 '어벤져스'에서는 아이언맨 슈트를 가상현실(VR·Virtual Reality) 시스템으로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분)는 3차원 디지털 이미지로 아이언맨 슈트 설계도를 살펴본 뒤 수정한다. 실제로 착용했을 때 모습도 디지털 이미지로 확인한다.

SF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VR 기술이 자동차 설계에 적용되고 있다. 영화처럼 3차원 디지털 설계 이미지가 눈앞에 펼쳐지면서 곧바로 3D 프린터와 같은 제작 시스템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단계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첨단 기술로 각광받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디지캐피털은 VR와 증강현실(AR·Augmented Reality) 시장은 2017년 100억달러에서 2020년에는 800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VR 기술이 처음 적용된 곳은 전투기와 같은 군사용 무기 개발 분야다. 전투 조종사 교육에도 VR를 활용한 트레이닝과 시뮬레이션 시스템을 사용했다. VR 기술은 이후 민간으로 넘어와 건축 설계, 게임, 영화, 교육, 의료 등으로 영역을 넓혔다.

자동차 분야에서도 2010년대 이후 VR 기술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자동차 개발·생산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다. 실제 새로운 차종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개발비 수천억 원과 3년 이상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기아차는 플래그십 세단인 K9을 개발할 때 연구기간 4년5개월 동안 5200억원을 투입했다. 르노삼성 QM6는 르노 그룹과 르노삼성차가 세계 시장 공략을 목표로 3년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총 개발비 3800억원을 투자해 만든 모델이다. 쌍용차도 올 2월 출시한 신형 코란도를 개발하기 위해 4년간 3500억원을 들였다.

자동차 개발에 VR 기술을 도입하면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는 것은 물론 결함 발생률도 줄일 수 있다. 시장 트렌드에 맞춰 후속 모델도 빨리 내놓을 수 있다. 또 새로운 차종을 디자인하는 것은 물론 디자인과 부품 정밀도를 검증하고 성능을 파악할 수 있다.

VR 기술은 자동차 생산에도 적용할 수 있다. 작업 능률을 높이고 사고를 줄여주는 '스마트 팩토리'를 구축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현재 차종 설계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VR 기술은 'CAVE'다. '컴퓨터 자동 가상 환경(Computerized Automatic Virtual Enviroment)'의 약자다.

인공으로 만들어낸 가상의 특정한 공간·환경·상황에서 인간의 오감을 자극해 실제와 유사한 공간·시간 체험을 제공하는 VR를 활용한 신차 개발 시스템이다. VR에 가장 적극적인 브랜드는 르노, 만(MAN), BMW, 포드, 메르세데스-벤츠다.

사진설명
포드 가상현실 자동차 디자인 실험 장면 /사진 출처=포드
프랑스 파리에서 30분 남짓 걸리는 이블린에는 르노 테크노센터가 있다. 건물 면적은 42만5000㎡, 내부 도로 길이만 20㎞에 달해 작은 도시 규모다. 르노는 1991년 R&D(연구개발) 시설을 한곳에 모아 효율성을 높이기로 결정한 뒤 7년에 걸쳐 테크노센터를 만들었다. 르노삼성 QM3도 이곳 작품이다.

르노는 이곳에 연간 매출액의 5~6%를 쏟아붓는다. 연간 25억유로(약 3조3000억원) 이상이다.

르노 테크노센터의 자랑은 신차 개발 시뮬레이터로 사용하는 CAVE다. 메르세데스-벤츠·BMW 연구진이 부러워하며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르노 테크노센터를 찾아왔을 정도다.

CAVE는 3D 구현 시스템과 슈퍼컴퓨터를 통해 모든 데이터를 실물 크기로 보여준다. 사방이 막히고 깜깜한 공간에서 작업이 이뤄지기 때문에 CAVE가 있는 공간을 사전 뜻처럼 '동굴(케이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르노 CAVE 연구시설에서는 안테나처럼 뿔이 여러 개 달린 VR 안경을 쓴 연구원이 운전석처럼 생긴 장치에 앉아 스티어링휠(핸들)을 움직이고, 고개를 상하좌우로 돌리는 장면을 볼 수 있다. VR 레이싱 게임을 즐기고 있는 게 아니라 개발 중인 신차를 테스트하는 모습이다.

르노 CAVE는 7000만 픽셀의 이미지를 3D로 구현한다. 몰입형 시각화 시스템과 슈퍼 컴퓨터가 결합해 모든 데이터들을 실물 크기로 보여준다.

르노는 CAVE를 내·외부 디자인, 운전자 드라이빙 포지션, 운전자 시각에서 바라본 디자인, 인터페이스 조작, 감성 프로파일 등을 검증하는 데 사용한다.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는 CAVE를 이용해 연구 결과를 세밀하게 분석할 수 있다. 르노는 CAVE 덕분에 모형을 제작할 필요가 사라지면서 연간 200만유로를 절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독일 상용차 브랜드 만트럭버스(MAN Truck Bus))도 독일 뮌헨 트럭공장에 CAVE 시스템을 구축했다. 만 CAVE는 폭과 높이가 각각 4m 정도다. CAVE를 가동하면 VR 안경을 착용한 개발자가 차체 내부를 표현한 영상 속으로 들어간다. 개발자가 작은 안테나가 달린 TV 리모컨처럼 생긴 기기를 잡으면 손 모양이 화면에 나온다.

리모컨 기기를 공구 쪽으로 대면 손이 공구를 잡는다. 다시 부품에 가까이 가져간 뒤 클릭 버튼을 누르면 부품이 공구에 잡힌다. 손을 좌우로 움직이며 차체 한곳에 부품을 놓으면 조립이 이뤄진다.

만(MAN)은 4~5년 뒤 내놓을 트럭을 개발하기 전 생산 가능성 여부를 확인하고 개선 방안을 검토하는 작업에 CAVE를 활용한다.

필요할 경우 뮌헨, 뉘른베르크 등 독일이나 유럽 다른 지역에서 근무하는 연구원들을 CAVE에 초청한다. 이들 중 일부는 자동차나 비행기를 타고 뮌헨공장에 올 필요가 없다. CAVE 시스템과 VR 안경만 착용하면 뮌헨공장 CAVE와 접속할 수 있어서다.

영화 '킹스맨'에서 안경만 착용하면 다른 나라에 있는 요원들이 회의실 의자에 앉은 모습으로 나타나는 홀로그램 회의 장면과 비슷하다.

사진설명
BMW는 생산 시스템에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을 도입했다 /사진 출처=BMW
BMW는 프라운호퍼 컴퓨터 그래픽 연구소와 공동 개발한 VR·AR 애플리케이션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있다.

실제 사진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현실에 가까운 VR 이미지와 실제 이미지를 보완하는 AR 애플리케이션은 모델이 실제 양산에 들어가기 전 설계·제조 공정에서 문제점은 없는지, 개선할 곳은 없는 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3D 스캐너와 고해상도 카메라로 실제 공장 구조를 디지털화한 뒤 건설·공장·물류·조립 분야 기획자와 생산 인력이 새로운 생산 영역을 평가하고 새로운 공정을 시험하는 데 VR·AR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하고 있다. AR 고글을 생산 인력 훈련과 숙련도 향상에도 사용하고 있다.

최대 25t가량 되는 자동차 생산용 프레스 도구를 점검할 때는 AR 애플리케이션으로 태블릿 내장 카메라로 촬영한 도구 이미지와 CAD(Computer-Aided Design·컴퓨터 보조 설계) 시공 데이터와 합친 뒤 생산 과정에서 편차가 발생하지 않았는지 확인한다.

포드는 VR 소프트웨어 업체 '그래비티 스케치'와 협력해 VR 기술을 활용한 자동차 디자인 실험을 진행 중이다.

그래비티 스케치를 사용하면 디자이너는 스케치 패드 대신 헤드셋과 컨트롤러를 통해 VR 세계에서 펜으로 스케치하듯 3D 디자인을 할 수 있다. 3D 스케치 특성상 차량 스케치 안으로 들어가 탑승자 관점에서 디자인을 바라보면서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가상 조립(Virtual Assembly)' 기술을 개발했다. 공장 작업자가 부품을 손에 들고 조립하는 동작을 하면 센서가 이를 인식해 화면 속에 있는 작업자의 아바타가 똑같이 움직이면서 부품을 조립한다.

부품을 실제 조립하기 전 문제점은 없는지 살펴볼 수 있다. 가상 조립을 체험한 숙련된 기술자들 의견을 반영해 생산 효율성도 높일 수 있다.

테슬라와 함께 전기차 시대를 연 미국 벤처기업인 패러데이 퓨처도 VR 기술을 활용해 전기차 콘셉트를 제작했다. 시제품을 만드는 대신 컴퓨터로 제작한 차를 VR 기술을 활용해 시험 주행하면서 오류를 찾아내 시정하고 성능도 향상시켰다.

지난해 12월에는 현대차와 삼성전자가 손잡고 신차 개발에 VR 기술을 활용한 삼성전자 HMD 오디세이 플러스를 적용한다는 소식이 전해져 주목받기도 했다.

HMD 오디세이 플러스는 삼성전자가 지난해 10월 출시한 프리미엄 VR 헤드셋이다. 이 헤드셋을 착용하면 2개의 3.5형 아몰레드가 만들어낸 고해상도 디스플레이가 펼쳐진다. VR는 물론 혼합현실(MR·Mixed Reality)까지 체험할 수 있다. MR는 몰입감이 우수한 VR와 현실을 활용하는 AR의 장점을 결합한 기술이다. 햅틱(촉각재현장치)을 통해 촉각 느낌까지 제공한다.

[최기성 디지털뉴스국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